속초사잇길 걷기 후기공모 은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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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사잇길 걷기 후기공모 은상 작품

운영자 0 4,815 2020.12.14 11:40

(글쓴이 김지희)

2020년을 되돌아보며 30대 초반인 나의 지인들에게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웰루킹(well-looking)이었다.

한때 열풍이었던 웰빙(well-being)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한다면 웰루킹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함을 넘어 타인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 하는 것을 말한다. 지인들이 SNS에 필라테스, 요가, 등산 등 운동을 하며 신체를 가꾼다던지 건강식, 여가활동 등의 인증 샷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요동치는 물결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예전과는 다르다. 이제는 일과 삶에 대한 균형을 생각하게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니며 보고 먹고 듣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걷는다. 지금도 걷기에 최적화되기 위해 인류는 진화중이다. 노을이 지는 아름다운 하늘을 고개를 드는 행위만으로도 볼 수 있다는 걸로 미루어 볼 때 인류의 직립보행은 어쩌면 선물과 같은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우연하지만 필연적으로 내가 속초에 정착하게 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속초가 어떤 동네라고 입이 아프게 말해서 무엇 하랴, 높은 산이 미세먼지를 막아주고 마음속까지 시원해지는 바다가 눈앞으로 펼쳐져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으로 이루어진 축복받은 곳이다. 하지만 단지 그 뿐.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몰랐을 뿐더러 아예 관심이 없었다. 10년 전 쯤 방송매체를 통해 속초가 그야말로 뜨기시작하면서 국내 최고의 관광지로 이름을 올리기 까지 과도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았다. 관광객들로 인해 지역사회의 많은 것이 변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다들 속초에 대해 궁금해 하고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속초사잇길 걷기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저 공기도 좋고 걷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니까 하고 시작했던 사잇길 걷기가 이렇게나 흥미롭게 와 닿을 줄이야 과연 누가 알았을까. 1길 영랑호길 부터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아바이마을길,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속초해변길을 지나 속초 시민들이 운동을 하기 위해 많이 다니는 등산로인 청대산길, 속초에서 아이가있는 가정이라면 주말의 필수 코스인 청초호길을 지나고 1919년 만세운동을 했었던 제 10길 대포만세운동길 까지 하늘과 땅이 준 그 모든 축복들이 10개의 사잇길에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다는 점이었다.

사잇길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걷다보니 짧게는 2km 길게는 대략 7km가 되는 길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길의 포인트가 되는 지점마다 열정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잇길 안내자의이야기를 듣다보면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같이 길을 걷는다는 사실만으로 유대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속초가 나의 고향이 아닌데도 가슴이 찡 해지는 것 역시 신기한 경험이었다.

10개의 모든 길이 참 아름답다. 각자의 모습대로 아름답고 의미가 있기 때문인지 길을 걸으며 보았던 모든 것이 가슴으로 와서 머리에 남았다. 단지 먹고 즐기고 하룻밤 자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관광지가 아닌 속초라는 곳을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리고 내가 사는 속초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싶다면 나는 주저 없이 속초사잇길을 꼭 걸어보라 이야기 하고 싶다.

속초사잇길을 걷다 보면 지금껏 그 길이 품어온 옛 이야기들과 눈과 마음으로 간직하게 될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 그 길 사이사이에서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것들에 대한 다짐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곳에서 태어난 나의 아이들을 위해 아름다운 속초사잇길을 함께 걸었고 앞으로도 걸어 나갈 예정이다.

올레길, 둘레길 그 많은 길 이름들의 사이에서 사잇길. 가만히 불러본 그 길의 이름은. 마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듯, 여러 번 되뇌어 볼수록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