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사잇길 걷기 후기공모 은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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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사잇길 걷기 후기공모 은상 작품

운영자 0 4,837 2020.12.14 11:32

속초사잇길을 걸으며 (글쓴이 권수진)

 

길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1년 전부터다. 속중 앞 횡단보도에서 휘날리는 현수막을 봤다. 속초시민아카데미라는 것인데, 격주에 한 번씩 테마를 가지고 연사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에 강좌 일정이 있었고 테마는 길에 관한 이야기였다. 10년 전에 기자가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강사는 제주도 올레길을 만든 분으로 내게는 예전 시사저널 기자로 더 다가온 분이었다. 그녀는 올레길을 만든 계기부터 큰 목소리로 열정을 담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통 특강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그렇게 그냥 놔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에 그녀의 특강에 대한 코멘트를 남겼다. 그것을 요약하면 길에 인생을 바친 자.’이다.

그때부터 길에 관심이 생겼다. 속초 지도를 펴놓고 가고 싶은 곳을 걸었다. 길치라서 계획대로 걷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헤매기도 했다. 누군가 속초는 선물이다.’라고 했던가. 길을 잘못 들어서도 거리마다 핀 꽃이 너무 예뻐 물끄러미 바라봤다. 걷는다는 것을 동사적 행위로만 접근하면 걸음수의 계량화와 직결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걷다 서다를 반복했으니 걸음 수도 적고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길을 걷는다는 것은 광활한 의미다. 길에는 나무와 꽃, 그리고 집과 사람들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셈이다. 길을 걸으며 스치는 향기와 여러 가지 소리들에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길에 우열을 나눌 수는 없겠지만 가장 아름다운 길은 영랑호길이다. 영랑호길은 예전에도 많이 걸었던 길이지만 걸을 때마다 감탄을 한다. 사실 운전할 때는 익숙한 길을 찾아도 걸을 때는 새로운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영랑호길은 걸을 때마다 새롭다. 아침에 걸을 때면 호수에 반짝이며 비치는 햇빛과 선선한 공기가 느껴지고 늦은 오후에 걸을 때면 붉고 노란 노을이 산을 넘어가는 모습에 걷다 말고 한참을 바라본다. 낮에는 새소리와 푸른 호수가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영랑호는 걸으면 걸을수록 영랑호를 아끼게 된다.

영랑호에 못지않은 것이 속초해변길이다. 해변을 따라 걸으면 마음이 넓어진다. 드넓은 바다와 파도를 보면 엄숙함이 느껴진다. 사진으로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줘도 사진에 그것을 다 담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장사-해변길 역시 한낮에 가면 파란 해변과 내리쬐는 태양에 한동안 서 있다 온다. 바다를 가진 도시의 여유다. 대포만세운동길에서는 대포항에서 물회와 새우튀김을 사 먹고 걸었다. 그런 길이 또 있는데 수복길이다. 중앙시장을 관통하는 이 길은 길을 걸으며 시장에서 사 먹는 재미에 영랑호처럼 몇 번이고 걸었는데, 나중에는 양 손에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생선이랑 채소까지 사서 들고 집에 오기도 했다.

길을 걷다가 당황하여 돌아간 적도 있었다. 청초천길에서였다. 길 한 가운데 크림색의 큰 개가 서서 큰 소리로 짖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하게 짖어서 결국 후퇴하여 돌아서 갔다. 왜 거기서 그렇게 짖고 있는 걸까. 주인이 없는 걸까. 주인은 있는데 그냥 풀어놓은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마음먹고 출발한 길에서 장애물을 만나 아쉬웠다. 그 날은 청초천길은 다음에 역방향으로 걷기로 하고 아바이마을길을 걸었다. 아바이순대국밥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래고 갯배를 타고 청년들이 하는 가게에서 디저트를 먹으며 기분전환을 했다.

길을 걷다 보면 불어오는 바람과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에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물아일체라는 게 이런 걸까. 함께 손잡고 걷는 사람의 촉감과 걸을수록 가벼워지는 나의 중량에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은 정리되고 의식은 맑아진다. ‘이라고 이름 붙여주기 전에는 모르는 길이 있다. 속초 곳곳의 보석 같은 길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사람들이 걷게 해줘서 감사하다. 덕분에 그 보석들이 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