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사잇길 걷기 후기공모 금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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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사잇길 걷기 후기공모 금상 작품

운영자 0 5,001 2020.12.14 11:25

나에게는 의사가 둘이 있다. 나의 왼 다리와 오른 다리. -조지 트레벨리언-

글쓴이 이은순

나는 속초사잇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리고 속초사잇길을 걸음으로써 나에게 왼 다리와 오른 다리라는 의사 둘이 있다는 조지 트레벨리언의 말을 몸으로 겪고 증명한 사람이다.

우울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몸은 아픈 와중에 갱년기가 오고, 자식들은 말을 안 듣고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세상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이건 너무했다. 그래도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고, 성격상 가만히 있지 못하고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무작정 속초사잇길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 사잇길을 걸었을 때는 1km 걷는 것도 힘에 부쳤다. 걷고 집에 돌아오면 다리가 붓고 종아리가 당기고, 엉덩이가 쑤셨다. 평생을 차만 타고 다니고 가까운 거리도 택시 타고 다니던, 하루 500m도 걷지 않던 나였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나 자신에게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참 간사하다는 말이 맞다 싶은 것이 나에게 실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더워서, 날이 추워서, 비가 와서라는 핑계로 오늘은 집에서 쉬자는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며칠 견디고 나가기 시작하니 내가 어느새 사잇길 위에 서 있었다.

오늘은 1, 내일은 2, 그 다음날은 3. 3월부터 12월까지 매일 다른 코스로 속초사잇길을 걷고 있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땀을 흘리던 내가 어느덧 코가 빨게 지는 겨울의 속초사잇길 위에 서 있다. 1km도 힘들어했던 내가 이제는 속초사잇길 전문가가 되었다.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계절과 함께 같이 시간을 지내왔다. 이건 속초사잇길을 통해 나, 지인 그리고 가족이라는 내 삶을 바꾼 시간이며 역사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속초에서 살았는데, 속초를 너무 몰랐다. 속초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 줄, 걸어서도 얼마든지 속초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속초사잇길 덕분에 숨 막히던 삶에 숨구멍이 트이기 시작했다.

먼저 처음과 비교해서 내 삶이 윤택해졌다는 것이다. 힐리언스 선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이시언 박사가 그랬다. 걸으면 세로토닌이 나오고 뇌와 신체를 맑게 해주는, 마음을 위한 운동이다. 맞는 말이다. 내가 직접 걸어보니 세로토닌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밝아지고 맑아졌다. 일단 마음이 맑아지다 보니 내 삶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달라지기 시작함을 느끼던 중 정기검진을 다니던 병원에 다녀왔다. 그러고 나서 내 삶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에 조금 더 확신을 가졌다. 나는 갑상선 치료와 관리를 받고 있었는데, LDL콜레스테롤의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몇 개월을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도 떨어지지 않던 수치가 정상이 된 것이다. 여기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고쳐지지 않던 식습관을 조절하는 나를 발견하였고, 다이어트 약으로도 빠지지 않던 체중이 감소했다. 체중이 감소하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니 전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 덕분에 짜증을 내는 횟수가 줄었고, 가족과의 시간이 즐거워졌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 나는 인생의 절반을 넘겼다. 인생의 절반을 넘긴 이후에 공허함과 헛헛함이 찾아왔지만 속초사잇길을 걸음으로써 기쁨과 즐거움의 에너지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인생 절반 이후의 내 삶은 속초사잇길 걷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될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넘어선 지금 나에게는 의사가 둘이 있다. 나의 왼 다리와 오른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