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해결된다.(Solvintur Ambul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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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해결된다.(Solvintur Ambulando) <글쓴이 김동민>

운영자 0 3,585 2020.12.14 11:59
우연히 걸었다. 그리고 그 걸음을 통해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했고, 내가 숨쉬기 시작했다. 라틴어 경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걸으면 해결된다(Solvintur Ambulando).
걷기는 우연이었다. EBS 다큐 <스페인, 산티아고를 걷다.>를 보고 걸어보고 싶었다. 아니 사실 정확히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나를 찾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그곳을 가지 못했고, 제주 올레길과 7번국도를 종주했다. 그러나 여전히 삶에 대한 고민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돌아와 속초 사잇길 제 1길 영랑호를 걸었다. 그러고나서 깨달았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다비드 르 브르통이 ‘걷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라고 말했듯이 걷기를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나를 찾기 위해 떠난 제주 올레길과 7번 국도 위에서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외로워졌고 내 내면은 더욱 방황했다. 내 삶의 방향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고 다시 걷기 위해 영랑호 발걸음을 뗐다. 영랑호로 범바위와 영랑교를 지나 장사항의 바다내음도 맡고 카누 경기장에 앉아 영랑호와 울산바위를 보며 사색에 빠져도 보았다. 그러다 습지공원을 걸어나와 이번엔 범바위를 올랐다. 범바위를 올라 그 위를 거닐어보고 앉아보고 누워도 보았다. 범바위 위에서 보는 영랑호, 장사항과 울산바위의 경치는 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그러다 문득 송강 정철이 떠올랐다. 정철이 관동팔경을 거닐며 관동별곡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겠다 싶었다.
정철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그것을 감상만 한 것이 아니라 우국충정, 연군의 정과 선정의 포부를 관동별곡에 담았다. 정철 역시 관동팔경을 기행할 때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걷기를 통해 관동팔경을 천천히 눈, 코와 귀로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걷기를 통해 느낀 것으로 관동별곡을 완성시켰을 것이다.
나 역시 영랑호를 걸으며 복잡하고 힘들기만 했던 마음이 어느새 고요해져있음을 느꼈다. 혼란스러운 마음로 시작한 영랑호 걷기가 마치 태아로 돌아가 엄마의 뱃속에 있는 것 같은 고요함, 평화로움과 평온함으로 바뀌어있었다. 심지어 즐거움과 행복감이 내 내면을 가득 채웠다. 걷기를 해서 지칠 법도 한데 오히려 에너지가 넘쳤고,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기뻤다.
물론 정철과 달리 여전히 나는 삶의 방향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 했다. 하지만 장사항의 비릿한 바다내음, 영랑호 나무들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울산바위와 속초의 하늘이라는 지붕 아래서 영랑호를 걸으며 느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 국경 상관없이 저명한지 아닌지를 떠나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떠나고 국토대장정을 하고 편안한 차를 두고 걸어 다니는 이유를 알았다. 걸으면 내가 바뀌고, 삶이 새로워진다. 매일의 내 삶에 긍정의 에너지와 기쁨의 감정들이 나를 이끈다. 걸으면 해결된다(Solvintur Ambulando).
매일 영랑호를 걷고 있고, 주체되는 않는 기쁨의 에너지를 얻고 있고, 매일의 삶이 새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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