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사잇길 걷기 후기 응모(김영필)

참여후기

속초사잇길 걷기 후기 응모(김영필)

살어리 살어리랏다! 속초에 살어리랏다!(김영필 010-3225-0138)

코로나19로 한해가 시작되어 코로나19로 한해가 저물고 있다. 연말이 되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사자성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지만 올해만큼은 그러한 사자성어가 잘 어울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저 코로나19에 지배당한 한해였던 것 같다. 역사는 어쩌면 2020년을 공백의 한 해로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밑에 서서 한해를 뒤돌아보니 진짜 잘한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속초사잇길 걷기’를 완보한 것이다. 나의 책장에는 속초사잇길 완보증서와 기념메달, 그리고 자랑스러운 29개의 스탬프가 찍힌 패스포트가 모두 13개나 보관되어 있다. 코로나19가 내게 준 선물이다. 역사는 모르지만 내 개인사의 2020년은 속초사잇길 걷기와 함께했다.
속초사잇길 걷기는 꽃과 함께했다. 시와 함께했다. 재해와 함께했다. 우리의 삶과 함께했다.
때 이른 초봄 영랑호길 걷다가 화들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가니 진달래 한 포기 송이송이 담아내어 활짝 피어 있었다. 검붉은 화염에 온 몸으로 맞서 검은 분칠로 한 해를 버텨낸 그의 뿌리는 파릇파릇 새순을 돋아냈고, 그 새순은 선홍빛 꽃잎을 피어냈다.
코로나19 시대는 숫자로 세상을 읽어야 한다. 1단계, 1.5단계는 이미 익숙하다. 속초시 1번 환자, 2번 환자는 아마도 완쾌되었을 것이다. 영랑호의 밤을 밝히는 벚꽃은 화려했지만 그를 감싸고 있는 할머니 손을 대신한 황토약손은 1번, 2번, 157번, 158번 번호가 매겨져 있다. 그날의 상흔을 이겨낸 너희들이 참으로 대견스럽구나!

왜 꽃비라 했을까?
누가 봐도 꽃눈인 것을
흩날리는 것을 보니 꽃눈인 것을
소복이 쌓이는 것을 보니 꽃눈인 것을

영랑호의 벚꽃은 꽃눈이 되어 4월 8일 아침에 흩날려 쌓였다.
6월 어느 날 밤, 오징어 채낚기가 한창일 때 장사항에서 바라본 수평선에는 일렬로 늘어선 오징어 채낚기 배가 쌍끌이 전법으로 오징어를 낚고 있었다. 하늘 위 드론에서 바라본다면 오징어 채낚기 배가 학익진 전법으로 오징어를 낚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칙한 생각을 해봤다.
두 번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참혹했다. 바다향기로는 파괴되었고, 바닷물이 넘친 항구와 해수욕장에는 빗물이 싣고 온 잔해로 넘쳐났다. 설악을 초고속으로 내려온 빗물은 뜻하지 않게 양질의 모래를 선사했으나, 우리네 발길이 만들었던 설악누리길을 자신들의 물길로 만들기도 했다.
우 설악 좌 동해 발아래 자그맣고 동그란 대포항이 보이는 대포항 전망대에서 고개를 들어 바다를 응시하니 밀려오는 파도를 헤치고 조업 나가는 고깃배가 보이고, 그 위에서 한가로이 날개 짓하는 기러기 떼가 평화롭다. 9월 중순 새벽의 대포항 전망대에 선 나그네는 그렇게 빛과 소리와 합치의 시간을 맞이했다.
청초천길 논두렁을 걷는 나그네의 눈에 띈 실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 참새가 떼를 지어 벼이삭을 쪼고 있다. 훠이훠이 가거라! 산 너머 멀리멀리! 허수아비 노릇도 해가며 걷는 아침 길, 그렇게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속초에 사는 것은 설악을 누리고 동해를 누리고 영랑과 청초를 누리고 사람을 누리는 것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속초에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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